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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김천’으로 떠나는 연말 여행

기사승인 2019.12.02  10: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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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경북 김천. 진갈색 숲과 한낮의 건조한 공기,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맵찬 기운은 겨울이 깊었음을 말해준다.

김천은 경북 내륙의 중심 고장이다. 경부고속도로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대구에서는 40분이면 닿는 거리다. 여기에 경부고속철도까지 통과하니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도시다. 충북 영동에서 추풍령을 넘어 4번 국도를 따라 김천으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영남 제1문은 그런 김천의 지리적 여건을 잘 말해주는 상징물이다.

▶경북과 충북을 이어주는 추풍령

구름도 쉬어 넘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이 도시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으니 천혜의 삶터임이 틀림없다. 예부터 삼남지방(호남, 영남, 충청)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물산이 이곳(추풍령)으로 모여 들었으니 거미줄처럼 뚫린 도로망 덕택이다. 추풍령(해발 235미터)은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 사이, 그러니까 우리나라 중부와 남부지방을 가르는 한 경계이며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고개로서, 금강과 낙동강 물줄기를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추풍령에서 가까운 직지사(대항면 운수리)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들머리의 숲길은 청신하기 그지없어 먼지에 찌든 도시민들의 가슴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절을 감싸 두른 황악산(黃岳山, 해발 1,111미터)은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린다. 날갯짓을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학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직지사는 신라 불교의 발상지로 418년(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직지사라는 절 이름은 고려 때의 능여대사(能如大師)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터를 쟀다는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전설일 뿐 ‘직지(直指)’의 본래 뜻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직관하면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가지런히 배치된 건물들이 멋스런 조화를 이루고 있다. 65동에 이르는 부속건물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럽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 대웅전 앞 3층석탑, 비로전 앞 3층석탑, 대웅전 삼존불 탱화, 청풍료 앞 3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비로전(일명 천불전)에 들어서면 천 개의 불상과 함께 동자상 하나가 있는데 늘 잔잔하고 온화한 미소로 방문객들을 맞아준다. 비로전 옆 사명각에는 이곳에서 열다섯 살에 출가해 서른 살에 주지가 된 사명대사(1544~1610)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앞 동쪽과 서쪽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보물 제606호)은 경북 문경의 도천사 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두 탑 모두 1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단아하고 미려한 모습이다.

직지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황악산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산다운 기개를 제법 풍기는 명산이다. 산행에 자신 있다면 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가보는 것도 좋겠다. 가파른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군데군데 쉴만한 돌너덜과 폭포와 소가 나타나 지루함을 덜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한 발 두 발 내디뎌볼 일이다. 다만 초보자는 등산 장비를 꼭 갖추고 가급적 동행자와 함께 오르는 것이 좋다. 정상에 서면 조망이 탁월하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시원스럽다. 

한편, 직지사 들머리에는 조각 작품과 시비, 장승, 야외공연장, 음악분수, 어린이 놀이터, 잔디밭, 지압보도, 산책로, 정자, 의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직지문화공원이 있다. 공원 한쪽에 있는 세계도자기박물관엔 기증품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도자기와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크리스탈 등 500여 점의 진귀한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도자기 역사와 흐름, 제작과정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고 도자기 자료 검색기와 도자 체험실도 갖춰놓았다.

▶독립운동가 여환옥이 태어난 구성면 광명리 마을

직지사에서 김천 시내를 거쳐 거창 방면 3번 국도를 한참 따라가면 방초정(구성면 상원리)이란 정자가 나온다. 연못가에 다소곳이 서 있는 2층 누각은 첫눈에 보기에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1788년 ‘가례증해(家禮增解)’를 저술한 이의조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초정은 구조가 특이하다. 2층 누각 중앙에 온돌방이 있는데, 1층에 아궁이가 있어 겨울철에 불을 때는 독특한 구조로 돼 있다. 특히 2층은 문을 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리면 방으로 쓸 수 있게 했는데 이는 방이 양끝에 있는 여느 누각과 다르다. 연못 중앙에 있는 두 개의 섬은 누각과 어우러져 독특한 정원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자엔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와 묵객들이 남긴 시와 글이 남아 있다.

방초정을 둘러보고 200미터 거리에 있는 원터마을에 가면 가례증해판목(家禮增解板木)을 보관한 숭례각(장서고)이 나온다. 이 판목은 1758년(영조 34년) 이의조 선생이 관혼상제의 예법을 전국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해 주자(朱子) 4대예서(四大禮書) 가운데 <가례(家禮)>를 예를 들어 해설하고 자기 설(說)을 첨가하여 1772년에 총 10권의 초본(初本)으로 완성하였다. 총 475매(954면)의 목판으로 목각기법이 우수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구성면 끝머리인 광명리에는 독립운동가 여환옥(呂煥玉 1896~1963)의 생가인 ‘성산여씨 하회댁’이 있다. 첫눈에 보기에도 고택의 품격이 느껴지는 이 집은 원래 18세기 초 성산여씨(星山呂氏)인 여명주(呂命周 1681~?)가 60여 칸 건물로 지었다고 전한다. 그런 우람한 건물이었지만 조선후기 농민항쟁으로 불에 타 일부가 훼손됐고, 1936년 병자년엔 큰 수해로 무너져 일부만 남게 되었다. 여환옥 선생은 고종(高宗 1852~1919)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1896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선생은 6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다고 한다.

성산여씨하회댁에서 가까운 지례향교(지례면 교천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1426년(조선 세종 8년)에 처음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90년(숙종 16년)에 다시 지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그 지역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대성전은 고풍스럽다.

▶무흘구곡에 안긴 두 절집

이번에는 3번 국도를 따라 증산면 소재지(수도산 방향)로 간다. 이곳엔 천년고찰인 수도암과 청암사가 있다. 두 절을 보기 전, 우리네 고향마을 같은 ‘옛날솜씨마을(장뜰마을)’에 잠시 들러보자. 도시민들을 위해 연중 짚공예, 두부 만들기, 널뛰기, 제기차기, 줄넘기, 곡식 빻기, 찐빵 만들기, 투호 등 다양한 전통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을엔 8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마을에서 나와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을 쌓고 있는 청암사(靑巖寺)로 간다. 불령산(佛靈山)에 둘러싸인 이 절집은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어떤 이는 이 절을 보고 ‘수줍음이 많은 절’이라 했다. 그만큼 고즈넉하고 고요하다는 의미일 게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아름드리 상록수가 숲을 이루고 있어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암사를 둘러보면 참 정갈하게 가꿔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님들이 손수 가꾼 텃밭이며 뜰이며 돌담 등이 깊은 인상을 준다. 경내에는 다층석탑을 비롯해 인현왕후가 묵었다는 극락전, 단청이 아름다운 대웅전 등 눈길을 끄는 건물들이 많다. 절 입구에 있는 우비천(牛鼻泉)은 ‘마시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청암사는 절집 앞 계곡도 참 좋다. 청기가 흐르는 계곡에 서면 일상의 무거움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청암사에서 나와 수도암 쪽으로 올라간다. 높푸른 하늘과 청신한 숲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계곡을 따라 얼마나 올랐을까, 갑자기 절경 하나가 나타난다. 달빛이 연못에 꽉 찬다는 만월담(滿月潭)이다. 조선 중기 학자 한강(寒岡) 정구 선생은 성주군 수륜면에서 이곳 김천 증산면 수도리에 걸쳐 있는 계곡의 절승에 반해 ‘무흘구곡(武屹九曲)’이란 이름을 붙여두었으니 1곡부터 5곡은 성주에, 6곡부터 9곡은 이곳 수도계곡 일대에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무흘구곡을 둔 수도계곡은 ‘김천의 강원도’라 불릴 정도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 울창한 숲이 압권이다. 소(沼)에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하는 용소폭포는 수도계곡 최대 비경이다. 용소폭포에서 자동차로 10여 분쯤 올라가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수도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에서 수도암을 거쳐 김천의 남쪽 끝인 황점리로 가는 길이 나 있다. 해발 1천미터의 임도 숲길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수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85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집으로 옛날 도선이 절터가 마음에 들어 7일간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법당(대적광전) 앞마당에 서면 연꽃을 닮은 가야산 상왕봉이 우뚝하다. 경내에 석조 비로자나불좌상(보물 307호), 쌍탑, 나한전 등이 있다.

헬스미디어 medical_hu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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