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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강화도 돌아보기

기사승인 2018.07.02  17: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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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굵직굵직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섬, 강화도다.

강화도는 강과 바다를 끼고 있다. 섬 한복판에는 크고 작은 산이 솟아 있고 9개의 작은 섬과 3개의 큰 섬이 딸려 있어 천혜의 자연 풍치를 자랑한다. 땅 넓이만큼이나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다양해 연중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자, 그럼 배낭 둘러메고 강화도로 떠나볼까.

강화도로 가는 길. 더없이 푸르고 삽상한 봄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강화도는 고대국가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 땅의 절반쯤 되는 섬이지만 섬 안에는 고인돌을 비롯해 갖가지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해서 사람들은 이 섬을 일러 ‘살아있는 국토박물관’이니 ‘숨 쉬는 역사 교과서’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사실 이 섬을 찬찬히 둘러보면 이 같은 말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화 여행은 섬을 잇는 두 개의 다리(강화대교와 초지대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예로부터 강화도는 해안을 따라 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해안에 들어선 진(鎭:오늘날의 대대병력), 보(堡: 토석으로 쌓은 작은 성으로 오늘날의 중대병력), 돈대(墩坮: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곳에 흙이나 돌로 축조한 소규모 방어시설로 오늘날의 해안초소를 말함)는 그 당시 이 섬이 국토방위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강화도에는 진 5곳, 보 7곳, 돈대는 자그마치 54곳이나 있다. 적의 침입을 불로 알렸던 봉화대도 8곳이나 된다. 해안을 따라 10리에 하나씩 진을 두었고, 진과 진 사이에는 다시 보를 두었다.


☞염하강을 앞에 둔 방어기지

강화대교를 건너 만난 갑곶돈대. 고려가 몽골(청나라)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뒤 흙과 돌로 쌓은 성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의 로즈 제독이 상륙한 곳이기도 하다. 갑곶돈대에 올라가면 강화대교와 북한땅에서 흘러내려오는 염하강물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갑곶돈대를 나와 해안길을 따라 내려가면 조선 숙종 때의 누각인 용진진을 비롯해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용두돈대, 덕진진, 초지진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조선 효종 9년(1658년)에 세운 광성보(사적 제227호)는 신미양요 사건의 격전지로서 근처의 초지진, 용진진, 덕진진과 함께 외침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광성보에서 잘 단장된 나무숲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용두돈대가 나온다. 용머리를 닮은 돈대 앞은 거친 물살이 흐르는 손돌목. 고려 때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하던 고종은 이곳에서 뱃길이 막히자 뱃사공인 손돌이 계략을 꾸민 줄 알고 그를 죽였는데, ‘손돌목’은 이때부터 생긴 이름이다.  

덕진진은 광성보에서 5분 거리에 있다. 고려시대 때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으로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축조되었다. 주변의 덕진돈대, 남장포대, 덕진포대와 함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덕진진을 지나면 이내 초지진이다.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효종 7년(1656년)에 구축했다. 모두 허물어져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일부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신미양요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함 운요호와 프랑스 함대와도 필사의 항전을 벌인 곳이다. 특히 운요호 사건은 다음 해 강화도 조약 체결의 빌미가 되었다. 복원된 성 안에는 그 당시 사용했던 대포 한 점만이 전시돼 있다. 성 위에 올라서면 아스라하게 흘러가는 바닷길이며 건너편으로 대명포구가 보이고 그 사이로 초지대교가 놓여있다. 초지진 오른편에 우뚝 선 노송 한 그루. 가만히 보니 여기저기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사건(1875년)으로 생긴 상처다.

 

☞섬을 둘러싼 광활한 개펄

분오리 돈대 앞의 동막해변은 개펄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직선거리 4킬로미터, 1천8백만 평의 갯벌이 펼쳐진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갯벌에 들어가면 발가락 사이로 보드라운 개흙이 밀려온다. 시간이 맞는다면 하늘을 물들이며 개펄 위로 떨어지는 해넘이도 감상해 보자. 이곳 동막해변을 포함한 강화도 남단 갯벌(천연기념물 제419호)은 세계 4대 갯벌에 들 만큼 기름지고 광활하다. 이곳은 지구상에 1500마리 정도 남은 멸종위기 보호종인 저어새의 번식지이기도 하다. 화도면 여차리에는 강화 갯벌의 분포 현황과 갯벌에 사는 생물들의 모형을 관람하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강화갯벌센터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갯벌에 서식하는 조류들을 관찰할 수 있다. 주변에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과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전등사가 있다. 전등사에서 해안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한반도의 배꼽에 해당하는 마니산(해발 468미터)이 솟아 있다. 하늘을 섬기며 살아가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사상이 깃든 곳이다. 산 정상의 참성단은 전국 체전 때 성화를 점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새로 놓인 연륙교를 건너 석모도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자연휴양림과 해수욕장, 사찰, 포구, 온천, 염전 등을 고루 갖추고 있는 섬이다. 특히 활처럼 휘어진 민머루해변은 폭 50m, 길이 1㎞의 모래사장과 드넓은 갯벌로 이루어졌다. 물이 빠지면 폭 1㎞의 갯벌이 드러나는데 게, 조개, 낙지 등이 지천이다. 민머루 해변 남쪽에는 어선 수 십 척이 정박해 있는 어류정항이 있다. 어선 이름을 딴 횟집들이 모여 있어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석모도의 하이라이트인 보문사의 419개 계단과 마애석불좌상도 놓칠 수 없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강화 8경에 꼽힌다.

 

☞선사시대의 무덤, 고인돌

강화도 북쪽으로 가면 지석묘(支石墓)라고 불리는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고인돌은 몇 개의 받침돌 위에 한 개의 넓고 커다란 덮개돌을 얹어 놓은 선사시대의 무덤양식이다. 강화도에는 고려산을 중심으로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고천리, 교산리 등지에 130여 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이 중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강화 지석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탁자식 고인돌로 덮개돌의 길이가 6.4미터, 폭의 길이는 5.2미터, 높이는 2.6미터다. 측량 결과 덮개돌은 무게가 자그마치 53톤에 이르고, 좌측 받침돌 13톤과 우측받침돌 9톤을 합치면 총 무게가 무려 75톤에 달한다고 한다. 내가면 오상리에는 11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오상리에서 가까운 고천리에도 18기의 고인돌 무덤이 흩어져 있다. 한편, 부근리 고인돌 옆에는 강화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하점면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섬 끝 모서리에 이르면 북한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가 있다.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인 이곳은 전망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던 곳이다. 지상4층 규모의 전망대에는 고성능 망원경을 비롯해 한국전쟁의 참상과 흔적을 볼 수 있는 각종 자료와 영상 시설이 갖춰져 있다. 전망대 앞쪽으로는 예성강이 우측으로는 개성공단이, 좌측으론 남북한 중립지역인 나들섬 예정지와 북한땅 연백군의 선전용 위장마을과 송악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연륙교로 이어진 또 하나의 섬

강화 동쪽에 석모도가 있다면 북쪽에는 교동도가 있다. 연륙교로 연결된 교동도는 번잡하지 않은 고즈넉한 섬이다. 곳곳에 쳐진 철조망과 길을 지키고 서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 좀 삭막하긴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섬이라 더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리를 건너 제일 먼저 만나는 고구저수지는 낚시 애호가들의 아지트다. 주말이면 고기를 낚으려는 낚시꾼들로 제법 떠들썩해진다. 저수지를 뒤로하고 좀 더 가면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대룡시장이 나온다. 시골 특유의 정감이 넘치는 이곳은 황해도 연백에서 장을 보러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만든 장터다. 400m 남짓 되는 시장은 주말이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로 시끌벅적하다. 비좁은 골목길 좌우로 이발소, 정육점, 분식집, 소품가게, 옷집 들이 가지런하다. 

시장을 둘러보고 섬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에 올라가보는 것도 좋겠다. 정상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산행길에서 만나는 연산군유배지와 한증막, 화개산성 등은 교동도의 역사를 헤아려보게 해준다. 이밖에 교동읍성, 교동향교, 새우젓으로 유명한 남산포구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교동도를 좀 더 돌아보고 싶다면 강화나들길(http://www.nadeulgil.com)코스를 따라가면 된다.

 

☞토종 특산물이 가득한 풍물시장

강화도는 문화유적지도 많지만 무엇보다 토종 특산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강화읍내에 있는 토산품판매점이나 인삼센터, 풍물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강화도에서 나는 농 수 축산물은 전국에서 알아줄 만큼 품질이 우수하다. 우선 이곳 농민들은 지역 특성에 맞는 유기 농산물을 재배한다.

고려 고종(1232년)때부터 재배가 시작된 강화인삼은 기후, 토양 등이 맞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인삼의 본거지인 개성 사람들이 이곳에 피난 와 본격적으로 재배가 이루어 졌다. 인삼센터에 가면 자연 그대로의 수삼을 비롯해 찌고 말린 홍삼, 약탕기에서 오랜 시간 끓여 만든 홍삼액, 인삼젤리, 인삼차 등 다양한 인삼을 볼 수 있다.

뿌리가 주먹 두 배만 하고 진자주색을 띠는 순무는 기후와 토질이 잘 맞는 황해도와 강화도 일대에서만 재배된다. 화문석, 인삼과 함께 강화도의 3대 특산물로 꼽힌다. 옛날에는 그 향 때문에 순무를 먹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순무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부터는 오히려 그 향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통 무와는 달리 카로틴 성분이 많아 동치미를 담그면 국물이 보랏빛이 된다. 김치를 담그면 익기 전에는 매콤한 맛이 나고 익고 나면 달콤한 맛으로 변한다. 바다에서 나는 밴댕이도 강화도의 명물이다. 밴댕이는 젓을 담그기도 하지만 회로 먹거나 갖은 양념을 넣어 무쳐 먹는 게 일반적이다. 밴댕이젓과 순무는 찰떡궁합 식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순무에 밴댕이가 들어가면  ‘순무섞박지’가 된다. 강화도 사람들은 이 순무섞박지를 그들만의 방법으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강화도의 특산품인 순무의 약효와 고단백 식품인 밴댕이의 영양이 한데 어우러진 토속 식품이다.

이외에도 강화도에서 나는 약쑥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편이나 허준의 동의보감에 나올 정도로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넓고 짙은 녹색이며 키는 70cm까지 자란다. 약쑥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뜸쑥, 쑥환, 쑥분말, 쑥차, 쑥음료 같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서울의 경동시장에서도 강화약쑥을 구할 수 있다.  

헬스미디어 medical_hu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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